멘탈체 [멘탈체] 11.의식적인 상념전이와 멘탈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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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12,345회 작성일 16-07-31 03:55본문
제 11 장
의식적인 상념전이와 멘탈치유
어떤 두 사람이 그러한 노력에 충분한 시간과 인내를 들이기를 좋아하고, 상념을 명확하고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상념전이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상념전이의 기술에 다소 능숙해지는 것은 거의 누구라도 가능하다. 물론 ‘심령 연구협회 보고서’와 같은, 그 주제에 관한 아주 방대한 양의 문헌이 있다.
두 실험자는 상호 편안한 시간을 맞추어 매일 10분 내지 15분을 그 일에 바쳐야 한다. 그 다음에 각자는 아무런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한 사람은 상념 투사자 혹은 상념전송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수신자가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한 사람이 비정상적으로 수동적으로 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이러한 역할을 교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구나, 한 쪽이 훨씬 전송을 더 잘하고, 다른 쪽은 받는 것을 더 잘 할 수도 있다.
전송자는 추상적인 사고에서부터 구체적인 물체, 가령 단순한 기하학도형 중 아무 것이나 하나의 상념을 선택해서 집중하고 의지적으로 그것을 수신하는 친구에게 그 인상을 심어 주도록 해야 한다. 마음이 파탄 잘리Patanjali에 의해 “한 점one-pointed”으로 자세히 묘사된 상태에 있으면서 전적으로 집중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주의력이 분산되거나 갈팡질팡하여 나쁜 습관이 형성되거나, 긴장을 하게 되므로 너무 오랫동안 집중하는 것은 좋지 않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수 초秒의 집중이 수 분分의 집중보다 더 안전하다.
수신자는 어떠한 사소한 신체적 불편으로 집중하는 상념에서 그의 주의력이 분산되지 않도록 가능한한 신체를 편안하게 하여, 마음을 텅 비우고―미숙한 자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일단 그 비결(요령)이 터득되면 아주 쉽다― 그 안으로 들어오는 상념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이것들이 나타나자 마자 적어야 하며 그의 유일한 관심은 여전히 수동적인 상태로 남아 있으면서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고 아무것도 조장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전송자 또한 그가 보낸 상념들을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그 두 기록을 비교해야 된다.
실험하는 사람들의 의지활용과 상념통제의 능력이 특별히 부족하지만 않다면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의 능력이 몇 주 지나,―아무리 늦어도 몇 달 지나면 개발될 것이다. 저자著者는 첫 시도에서 그것이 발생하는 것을 체험했다.
“올바른White” 신비학도는 일단 상념전이의 가능성을 확신하면,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학구적인 실험이나, 그들 자신의 판단에서는 유용할 지 모르지만 그의 친구들에게 단순히 친근한 상념들을 내보내는 것에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자신의 상념의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다.
이리하여 하나의 명백한 예를 들어, 학도가 음주와 같은 해로운 습관에 빠져 있는 사람을 돕고 싶어한다고 가정하자. 그는 먼저 수면 시간과 같은 어떤 시간대에 환자의 마음이 작용하고 있지 않은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 사람이 잠이 든다면 그만큼 더 좋다.
그러한 시간대에는 홀로 앉아서 환자가 자신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마음 속에 상상해야 한다. 아주 명확한 심상화가 되면, 필수적이진 않지만, 만약 그 영상이 생생하게, 명확하게 그리고 자세히 심상화가 되면, 그 과정은 더 효과적이다.
만약 환자가 잠들어 있는 상태라면, 그는 그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의 아스트럴체가) 끌려 올 것이고, 형성되어온 자신의 영상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다.
그 다음에 학도는 마음을 완전히 집중하여 그 영상에 고정시켜 그가 환자의 마음에 인상을 주기를 원하는 상념들을 말해야 한다. 그는 자기가 직접 환자 앞에 안건들을 내놓거나 말로써 간청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는 것만큼 명확한 멘탈 이미지들을 이 상념들에 제공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환자의 의지를 통제하려고 시도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해야 할 일인 단지 그의 마음의 지성과 감정에게 호소하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형성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행하기 위한 노력을 하도록 돕는 것일 뿐이다.
그에게 어떤 특별한 행동 노선을 강요하는 시도가 행해져서 그 시도가 성공한다 할지라도, 얻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첫 째로, 강요로 인해 효과를 약화시켜 그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그가 지금까지 저지르지 않았던 악행보다 더 많은 해를 그에게 미칠 지도 모르다. 두 번째로, (다른 종류의) 유해한 방종에 멘탈적으로 빠지는 경향은 특별한 형태의 방종에 탐닉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한 쪽에서 제지당하면 그것은 다른 쪽을 찾을 것이고, 새로운 악이 과거의 악을 대신할 것이다. 이리하여, 의지를 지배당함으로써 강요를 받아 절도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악을 치료받지 못하는 것은, 그가 감옥에서 옥살이를 할지라도 치료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실제적인 고찰은 별도로 하고,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심지어 올바로 행동하도록 할 때조차도 그에게 자기의 의지를 강요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참된 성장은 외부의 강제력에 의해서 도움을 받지는 않는다. 실제적인 이익을 얻기 전에, 우리의 지성intelligence은 (신성을) 확신해야 하며 감정은 각성되고 정화되어야 한다.
만약 학도가 그의 상념을 통하여 어떠한 다른 도움을 주기를 원한다면, 그는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우리가 제 8장에서 살펴 본 것처럼, 일반적인 보호력으로서 친구에게 보내어진 친구가 잘되기를 바라는 강한 희망(소원)은, 상념의 강도에 비례하는 시간 동안 상념형태로 그 주위에 남아 있을 것이고, 악한 상념들에 대하여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하며 심지어는 물리적인 위험들을 막으면서 악에 대하여 그를 보호할 것이다. 비슷하게 보내어진 평화와 위안의 상념은 그 대상 주위에 고요한 분위기를 퍼지게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요하게 한다.
이리하여 상념전이가, 시술자로부터 환자에게 선하고 강한 상념들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멘탈치유mind-cure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의 예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멘탈학, 멘탈치료mind-healing 등등이다.
단순히 자신이 건강하다고 믿게 함으로써 사람을 치유하는 시도가 행해지는 그러한 방법들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최면적인 영향이 빈번히 작용한다. 인간의 멘탈체, 아스트럴체와 에텔체는 아주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서, 만약 어떤 사람이 멘탈적으로 자기 자신이 건강하다고 믿는다면, 그의 마음은 신체로 하여금 그의 멘탈 상태와 조화를 이루게 하여, 치료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블라바츠키H.P.Blavatsky여사는, 시술자가 환자의 습관을 깨뜨리고 환자의 의지가 술에 취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하여 스스로를 굳건히 할 수 있도록 그의 의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시술할 줄 안다면, 그를 음주로부터 구해내기 위하여 최면을 사용하는 것은 적법하고 심지어 현명하다고 여긴다. 환자의 의지력이 알콜중독에 의하여 마비되었기 때문에, 최면술사는 그 사람의 의지가 회복되어, 의지력을 다시 행사할 수 있도록 일시적인 방편으로 최면의 힘을 사용한다.
신경계통은 영적인 능력들을 물질계에서 표현하기 위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신경질환들은 의지력에 가장 쉽게 굴복한다. 교감계통은 욕망의 형태와 의지적인 측면에 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의지력이 그 계통에 먼저 작용할 때 가장 빨리 그 효과들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뇌척추 계통은 인식과 순수의지의 측면에 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다른 치료방법은 치료자로 하여금 먼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정확히 발견하고, 자신이 그 기관을 마음 속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 그 기관이 마땅히 되어야 할 건강한 상태를 상상한다. 다음으로는 그가 이렇게 창조한 멘탈 상념체 속으로 그는 아스트럴 질료astral matter를 만들고, 자기력에 의하여 그 체에 이용가능한 물질들을 사용하며 외부로부터 어떠한 부족한 것들을 보충하면서 에텔 질료로서 그 아스트럴 질료를 더 조밀하게 하여 결국에는 기체, 액체, 고체들로 형성된 보다 조밀한 물질을 만들게 된다.
이 방법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가 향상(진전)된 단계의 경우에는, 물질계적인 의식에서는 지식이 부족할 수도 있는 시술자의 의지는 상위의 계로부터 인도를 받을 수도 있다.
이 방법에 의해서 하는 치료들에는, 위에 언급된 교감(신경)계통에 작용하는 것보다 쉽고 따라서 보다 일반적인 방법에 의해 의한 치료들에 따르게 되는 그러한 위험이 없다.
그러나 의지력에 의한 치료에는 어떤 위험이 있는데, 즉 병을 보다 높은 체 안으로 몰아넣는 위험이 존재한다. 병은 종종 이전에 고급계들에 존재했던 악을 최종적으로 표출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그것을 제지하여 다시 더 정묘한 체 속으로 되돌리는 것보다는 병이 스스로 표출되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
만일 병이 악한 욕망이나 악한 상념의 결과라면, 그때는 물리적인 치료수단이 멘탈적인 수단보다 더 좋다. 왜냐하면 물리적인 수단은 그 질병(의 원인)을 다시 상위의 계로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인데, 그러한 일은 만일 멘탈적인 수단이 사용되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메스메리즘mesmerism은 이것이 물리적이면 적합한 치료과정이 된다.
참된 치료법은 아스트럴체와 멘탈체를 완벽하고 조화롭게 만든다. 그러나 이 방법은 훨씬 더 어렵고 의지를 사용하는 방법만큼 그 효과가 신속하지 않다. 감정과 마음의 순수함은 육체의 건강을 의미하고, 마음이 완벽히 순수하고 균형이 잡힌 사람은 자기가 없애야 할 카르마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생긴 부조화들 중 얼마를 자신이 짊어질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신체상의 질병에 걸리지는 않는다.
물론 치료하기 위하여 상념의 힘을 사용하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 왜냐하면 마음은 우주에 있는 하나의 거대한 창조력인데, 우주에서는 신적인 창조력이고 인간에게서는 인간적인 창조력이다. 그리고 마음은 창조할 수 있는 것 바와 같이 회복시킬 수도 있는데, 상처가 난 곳으로 마음을 돌려 그 힘으로 상처를 치료하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김에 우리는 또한 “매력glamour”의 힘은 간단하게 명확하고 강한 멘탈 영상을 만든 다음에 그것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투사하는 능력일 뿐이라는 것에 유의해야한다.
종종 기도祈禱에 의하여 타인에게 주어지는 도움은 주로 지금 막 설명한 것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일반적인 소원들과 비교할 때, 기도가 빈번하게 효과가 있는 것은 경건한 신자가 그의 기도 속으로 몰입하는 더 큰 집중과 강도에 기인한다. 기도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집중과 강도는 유사한 결과들을 낳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의 상념의 힘에 의하여 생기는 기도의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학도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어떤 진화된 인간이나 초인이나 심지어 비인간적인 지성적인 존재의 관심을 불러들이기 위한 간구에 기인하는 기도에 의한 다른 결과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기도를 하는 사람이 소유한 어떠한 능력보다도 더 뛰어난 능력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기도응답”에 관해서는 여기서 곧 바로 다루지는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상념으로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죽은 사람들”에게 훨씬 더 쉽게 행할 수 있다. ‘아스트럴체’에 설명된 바와 같이, 사후의 사람의 성향은 주의(관심)를 내부로 돌리며, 외부세계에서 살기보다는 오히려 감정과 마음(의 내부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욕망 엘리멘탈Desire-Elemental에 의한 아스트럴체의 내부로의 재배열(재구성)은 더욱 더 멘탈 에너지들을 가두어 놓고 에너지가 외부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억제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외부지향外部指向적인 에너지들을 이렇게 억제한 사람은 멘탈계로부터 오는 영향들에 더욱 더 민감하게 되어, 지상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도움을 받고, 기운이 북돋워지고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사후 세계에서 사랑의 상념loving thought은 이 세상에서 표현되는 사랑의 말이나 부드러운 애무만큼이나 감각에 쉽게 느껴지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사랑과 평화의 상념들, 그리고 신속하게 위쪽으로 통과하려는 열망을 추구해야한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이러한 측면에서 보며 자기들을 도와줄 방법을 아는 친구들이 없기 때문에, 친구들이 있을 때보다 더 오랫동안 중간상태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위대한 종교들을 창설한 신비주의자들은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죽어서 나아갔던 사람들을 위하여 당연히 치러져야 하는 예식(의식)에 관하여 무관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힌두교도에게는 쉬라다Shraddha가 있으며, 기독교인에게는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와 기도문구가 있다.
이와 비슷하게, 상념전이가 반대로, 즉 육체를 떠난 자들로부터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로 발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리하여, 예를 들면, 특정 주제에 관한 강사의 강한 상념은 그 주제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육체를 떠난 존재들의 관심을 끌지도 모른다. 사실, 청중은 신체를 가진 사람들보다 아스트럴체를 입은 사람들을 종종 더 많이 포함하고 있다.
때때로 이러한 방문객들 중 하나가 강사보다 그 주제에 관하여 더 많이 알 수도 있다. 그러한 경우에 그는 암시나 예증들로 강사에게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만약 강사가 투시능력이 있다면 그는 그 조력자를 볼 지도 모르고 새로운 생각들이 자기 앞에 더 미묘한 질료로 구체화될 것이다. 만약 강사가 투시능력자가 아니라면, 그 조력자는 아마도 강사의 두뇌에 생각들을 새길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 강사는 그것들이 자기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종류의 도움은 종종 “보이지 않는 조력자”에 의해 제공된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사용되는 통일된 어떤 집단의 결합된 상념의 능력은 신비학도들과 마음의 과학을 보다 깊이 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리하여 기독교계의 어떤 교파에서는 어떤 특정구역을 복음화하기 위하여 선교단을 파견하기 전에 명확하고 지속적인 상념thinking을 보내는 것이 관례이다. 이런 식으로 전해질 가르침이 확산되기에 매우 호의적인 상념분위기thought-atmosphere가 그 구역에서 창조되어, 민감한 두뇌들은 그들에게 전해질 가르침에 대하여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로마 카톨릭교의 명상단체―수도원―들은 힌두와 불교의 은둔자들처럼 상념으로써 많은 이익을 주고 유익한 일을 한다. 사실상, 선하고 순수한 지성의 존재가 전세계에 고상하고 고매한 사상들을 퍼뜨림으로써 세계에 도움을 주는 일에 착수하는 바로 그 곳에서, 인류에 대한 봉사가 진행된다. 그러한 상념을 만드는 그 외로운 사고자思考者는 세계를 영적으로 고양시키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된다.
한 사람의 상념분위기(상념영역)가 다른 사람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우리가 반半의식적인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에 관한 또 다른 실례는, 학도나 제자를 영적인 스승 즉 구루에 연결시키는 일에 관한 것이다.
동양에서는 이것이 잘 이해가 되고 있다. 거기서는 제자 훈련의 가장 중요하고 효율적인 것이 항상 스승의 면전에서 생활하며 스승의 오오라에 완전히 둘러싸이는 것이라고 인정되고 있다. 스승의 다양한 체들은 모두가―비록 제자가 때때로 잠깐 동안 연결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제자의 여러 가지 체들보다 더 높고 더 규칙적인 진동율로 끊임없이 강한 파장(폭)으로 진동하고 있다. 그러나 스승의 훨씬 더 강력한 상념파동들에 의한 계속적인 압력이 제자의 상념파동들을 같은 수준으로 서서히 끌어올린다. 이것은 음악적인 훈련과정을 이해하면 유추해서 대체적으로 납득이 간다. 아직 음악적인 귀가 거의 열리지 않은 사람이 혼자서 정확한 음정으로 노래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가 이미 완벽하게 훈련되어 있는 다른 사람의 더 강한 목소리와 함께 노래한다면 그의 일은 더 쉬워지게 된다.
중요한 사항은, 주음主音에 해당하는 스승의 상념파동은 언제나 고진동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스승과 제자 어느 쪽에서도 의식할 필요없이 밤․낮 제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제자의 여러 가지 정묘한 체들은 훨씬 더 쉽게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게 된다.
(기계적일 정도로) 무의식적이고 아무런 생각없이 행동하는 일반 사람은 누구도 영적인 스승의 조심스럽게 통제된 영향력의 100분의 1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일반 사람의 많은 수효가 개개인의 부족한 힘를 어느 정도 메꾸어 줄 수 있어, 우리의 동료들이 가지고 있는 의견과 감정에 의해―느끼지 못하지만 끊임없이―가해지는 압력때문에 우리는 부지중에 자주 그들의 편견 중 많은 것을 흡수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인종 및 민족적인 상념 영향을 다룰 때 이전의 장에서 본 바와 같다.
매스터에 의해 “받아들여진(accepted)” 제자는 매스터의 상념과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어 제자는 그가 받아들인 상념이, 주어진 어떤 주제에 관한 것인 지를 언제라도 알기 위해 자신을 훈련할 수가 있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종종 잘못을 모면한다. 매스터는 어떠한 때라도 하나의 암시나 아니면 메시지로(message:전언) 제자에게 상념을 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만약 제자가 편지를 쓰거나 강의를 하고 있다면, 매스터는 무의식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어떤 때라도 제자의 마음속으로 편지에 포함되거나 강의에 사용될 문구를 보낸다. 초기 단계에서는 제자는 종종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 생각들이(ideas)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곧 매스터의 상념을 인식하는 것을 배운다. 사실상 멘탈계와 아스트럴계에서는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가장 친근하게 (스승의 암시와) 유사한 암시를 기꺼이 보내줄 많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에, 제자는 스승의 상념을 인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 그리고 제자가 그러한 암시들이 누구에게서 오는 지를 분간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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